1월의 어느 금요일, 동이 트기 전, 43세의 한 남성이 프랑스 서부 생레제수쇼레의 자택에서 끌려갔다. 그는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바스굴렌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송되어 구타당하고, 결박된 채 버려졌다. 12시간 뒤, 파리 교외에 해가 지자, 권총 한 자루로 무장한 세 명의 남자가 베르뇌유쉬르센의 한 가정집 문을 걷어찼다. 그들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과 아내를 구타하고, 네 명 모두를 케이블 타이로 묶은 뒤 집을 뒤지고는 기차역으로 떠났다. 그것은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70번째 공격이었다.
이틀 뒤, 나는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11명으로 구성된 팀을 만나러 갔지만, 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은 팀원이 아니었다. 라운지 한쪽 작은 책상에 애플 노트북을 놓고 앉아 있던 그는 짧게 깎은 머리에 다부진 체격의 미국인이었는데, 코드를 작성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체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경호원이었다.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일리엔싱크(iliensinc, Aliens Incorporated의 약자)가 호텔에서 사무실까지 나를 안내했다. 비가 나무 사이로 우산처럼 드리우는 거리를 걸으며, 그녀는 원래 이 동네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금융 지구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시작했지만, 또 다른 공동 창업자—팀에서 유일하게 가명을 쓰지 않는 사람—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힐끗거리는 시선, 얼굴을 알아보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낯선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 그래서 회사는 더 조용한 곳으로, 아무도 그들을 찾으리라 생각하지 못할 건물로 이전했다.
청소부조차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청소부는 자기가 봉제 고양이 인형을 만드는 상품 회사를 위해 먼지를 닦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무실에 인형이 34개나 있으니 그런 오해도 무리는 아니다. 회사 마스코트는 하이퍼(Hypurr)라는 고양이이고, 그중 12개가 캐비닛 위에 올라앉아 있다. 하지만 상어, 도마뱀, 코알라, 펭귄, 용도 있고, 그중 몇몇은 델 모니터 위에 털북숭이 가고일처럼 걸쳐져 있다. 한 엔지니어가 대부분의 인형을 가져왔다. 아내가 더 이상 집에 가져오지 말라고 해서 회사에 들고 온 것이다. 팀은 청소부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왜냐하면 블록체인 암호화폐 거래소인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는 직원 1인당 수익률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기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명의 직원이 9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설립 3년, 시가총액 100억 달러이며, 벤처 캐피털을 단 1달러도 받은 적이 없다. 핵심 인물인 제프리 얀은 31세이며, 완전히 자발적이지는 않지만, 성공하면 납치당하는 산업에서 가장 잘 알려진 얼굴 중 하나가 되었다.
하이퍼리퀴드 이전, 얀은 푸에르토리코에 살며 암호화폐 업계에서 가장 큰 익명 트레이딩 오퍼레이션 중 하나를 거의 혼자 운영했다. 이름은 카멜레온 트레이딩(Chameleon Trading)—카멜레온은 중학교 시절 비디오 게임에서 쓰던 핸들이었다. 자기 저축 1만 달러로 시작했고, 2년 반 동안 연간 수천 퍼센트씩 성장했다. 수익률을 말해주고는 곧바로 그것이 대단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그의 반론을 기록했다. 그리고 카멜레온이 그를 매우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기록했다. 27세에 그는 자유로웠다. 산후안의 서퍼와 바텐더와 웨이트리스 모두에게, 그는 보드 쇼츠를 입은 평범한 청년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그는 싱가포르의 경비된 사무실에서 회색 안락의자에 다리를 꼬고 맨발로 앉아, 검은 반바지와 짙은 파란색 티셔츠 차림으로, 왜 금융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지를 내게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왜 그가 첫 번째 삶을 두 번째 삶과 바꾸었느냐는 것이었다.
돈 때문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얀은 부유하게 자라지 않았고, 그의 삶 어디에도 부유하게 살고 싶다는 흔적은 없다. 매일 같은 룰루레몬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는다. 반바지 15벌, 셔츠 10벌, 각각 세 가지 색상. 주변 사무실에도 부의 흔적은 없었다. 가구는 이전 임차인의 것이었다. 팀이 추가한 것이라곤 라운지의 보드게임 두 개, 벽의 NFT, 그리고 봉제 고양이들뿐이었다. 선반에서 책 네 권을 발견하고 그중 하나가 프랭크 슬루트먼의 Amp It Up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인 경영 서적이다. 일리엔싱크에게 언급했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정신은 자기들 것이지만 책은 아니라고. 부엌에서 발견한 그레이 구스와 맥켈란 세 병도 마찬가지로 그들 것이 아니었다. 2년 전 최소 주문 금액을 채우지 못한 커뮤니티 행사 이후 손대지 않은 채였다. 이 팀은 차를 마신다.
암호화폐에 대한 사랑도 아니었다. 여전히 업계의 기준이 되는 비트코인은 10월 초 고점에서 약 30% 하락한 상태였다. 비트코인이 대체하기로 되어 있던 금은 같은 기간 7% 올랐다. 대부분의 토큰은 더 나빴다. 업계를 둘러싼 부정적 분위기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변호하지 않았다. "이 업계에는 수상한 행동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이것들이 광고하는 것과 다르다는 걸 깨닫는 건 건강한 일일 수 있어요." 그는 하이퍼리퀴드를 암호화폐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우리를 인터넷 회사라고 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암호화폐를 사용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얀을 포함해 팀에서 이전에 암호화폐 분야에서 일한 사람은 둘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초기 암호화폐 사람들은 주로 빠르게 돈을 버는 데 관심이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구축하고 있으며, 트레이더보다는 기술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과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공급 문제이기도 하다. 하이퍼리퀴드는 국제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수상자들 중에서 채용한다. 얀은 18세에 물리학 금메달을 땄다. 엔지니어 중 한 명은 정보학 은메달 보유자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미국 대표팀 훈련을 받았다. 얀은 더 채용하고 싶어 하고, 올해 초 방문 이후 두 명을 더 영입했지만, 이 수준의 인재 중 암호화폐 분야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수년간의 사기와 깨진 약속, 그리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때문에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미 뭐든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번 얀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적어도 바깥세상에서 보면, 그 답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하이퍼리퀴드는 자체 트레이딩 거래소가 위에 구축된 블록체인이다. 전통적인 거래소에서는 회사가 당신의 돈을 보관하고 인프라를 통제한다. 하이퍼리퀴드에서는 당신이 자기 돈의 관리를 유지하고 플랫폼은 공개되어 있다. 얀이 아무런 아이러니 없이 밝힌 비전은, 모든 금융을 수용하는 것이다. 고양이 인형들을 보느냐 플랫폼 수치를 보느냐에 따라 야심이거나 황당함이다. 왜냐하면 내 방문 이후 몇 달 동안, 100년 넘게 같은 방식으로 거래되어 온 시장들이 작지만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이퍼리퀴드는 2023년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로 시작했다. 파생상품의 한 종류이자 암호화폐 최대 시장이다. 퍼프(perp)는 실제로 소유하지 않는 자산의 가격에 대한 베팅이며, 전통적인 선물과 달리 만기가 없다. 이 베팅 시장은 자산 자체를 사고파는 시장의 6~8배, 월 약 7조 달러 규모이며, 최근까지 사실상 전부가 중앙화된 거래소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중 단연 가장 큰 곳이 바이낸스였다. 탈중앙화 플랫폼은 한 번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이퍼리퀴드가 최초였고, 바이낸스 시장 점유율의 약 14%까지 성장했다.
그리고 2025년 10월, 하이퍼리퀴드는 중앙화 거래소가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가격 피드가 있는 모든 자산에 대해 누구나 플랫폼에서 새로운 무기한 선물 시장을 개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트레이드[XYZ](Trade[XYZ])라는 독립 그룹이 가장 활발했다. 은 시장으로 시작했다. 1월까지 24시간 거래량이 CME(시카고상품거래소, 1898년 설립된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의 약 2%에 달했다. 그 다음 원유를 상장했다. 원유는 항상 주말에 닫히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왔다. 2월 말 어느 토요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폭격을 시작했다. CME는 휴장이었다. 하이퍼리퀴드는 열려 있었다. 원유 일일 거래량이 2,100만 달러에서 37억 달러로 치솟았다. 한 달 뒤, 트레이드[XYZ]는 S&P 다우존스 인디시즈의 공식 라이선스를 받은 S&P 500 무기한 선물을 출시했다. 주말 포함 24시간 거래된다.
이제 하이퍼리퀴드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들은 얀을 위해 일하지 않는,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일하지 않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트레이드[XYZ]의 창업자는 익명을 요청했는데, 2013년에 66달러로 첫 비트코인을 사고 이후 줄곧 투자자였지 빌더가 아니었다. 회사를 시작할 계획이 없었다. 얀이 아니었다면 자기는 더 이상 암호화폐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이퍼리퀴드는 암호화폐를 구원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왜 하이퍼리퀴드가 얀이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는지를, 바로 직전까지 될 것처럼 보이다가 안 되는 것이 일상인 업계에서, 또는 왜 그가 푸에르토리코의 삶을 포기하고 그것을 알아내려 했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런 질문들은 사무실에서의 첫째 날 오후 내내 나와 함께였다. 일리엔싱크와 라운지에서 이야기하는 동안, 테이블 위에는 봉제 고양이가, 공기 중에는 점심의 생강과 참깨 향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3년 전 얀이 카멜레온은 끝이라고 발표했을 때 팀도 같은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답은 암호화폐가 아니라 얀이 어떤 사람인가에서 시작했다. 어머니에 대해 물어보라고 했다.
얀은 미팅을 바깥에서 하는 것을 선호한다.
우리는 네 개의 회색 라운지 의자와 커피 테이블이 놓인 옥상 테라스에 앉았다. 아래로 차들이 지나갔다. 몇 분마다 정원사가 예초기를 돌렸다. 횡단보도의 신호음이 오고 갔다.
얀은 발을 몸 아래로 접고 앉았고, 어머니에 대해 물었을 때 잠시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격언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중국 속담이었다. 人外有人天外有天(런와이요우런 톈와이요우톈), 대략 "사람 밖에 사람이 있고,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뜻이다.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네가 아무리 잘한다고 생각해도 세상에는 네가 보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미국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수익성 높은 지역의 한가운데, 샌프란시스코와 팰로앨토 사이의 레드우드 쇼어스에서 그와 여동생을 홀로 키웠다. 오라클의 거울처럼 빛나는 본사가 동네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이웃들은 엔지니어와 프로덕트 매니저였고, 그들의 아이들은 이미 얀이 나중에 만들어낼 것과 같은 삶을 위해 길러지고 있었다. 모두 중국 이민자인 부모님은 그가 3학년 때 이혼했다. 아버지는 떠났다. 회계사인 어머니는 매 세금 시즌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초과 근무를 했고, 그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원망한 적은 없어요. 밖에 나가서 노는 건 돈이 많이 들지 않으니까요."
학교에는 학업 경쟁 문화가 없었다. 격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얀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십 대가 되기 전까지 아무도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밖에서 놀고, 학교에 가고, 집에 와서 또 놀았다. 그의 우편번호 기준으로 그는 가장 드문 존재였다: 내버려둔 아이.
레드우드 쇼어스에서 반려견 맥스와 함께한 얀.
8학년 때, 사립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가 수학 경시대회에 같이 가자고 했다. 친구는 동행이 필요했다. 얀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학교 수학은 이것과 전혀 달랐다. 외울 공식도, 계산도 없었다. 때로는 한 문장짜리 문제가 주어지고, 알아서 풀어야 했다. 답은 숫자가 아니라 증명, 즉 무언가가 반드시 참인 이유를 보여주는 완전한 논증이었다. 마지막에는 단거리 주자처럼 순위를 매겼다. 얀에게 그것은 스포츠의 최고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의 최고가 합쳐진 것이었다.
그해 여름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인터넷에서 옛 경시 문제를 다운받아 방에서 혼자 풀었다. 과외도 없었다. 여름 프로그램을 다닐 형편도 안 됐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저는 엄청나게 경쟁적이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평생 해온 경주가 있었는데, 저는 뒤처져 있었던 거죠."
시작한 지 1년 후, 9학년이 되었을 때, 그는 전국 상위 50명의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미국 수학 올림피아드 훈련 캠프에 합격했다. 방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대표팀에는 들지 못했다. 상관없다고 했다. 3주 동안 세 문장을 다섯 시간 동안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대부분의 다른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진리를 찾아내는 십 대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수학의 로저 페더러는 없다고 얀은 말했지만, 최정상에는 페더러가 가진 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 증명이 구성되는 방식에 스타일이 있고 우아함이 있으며, 훈련 캠프에서 처음으로 그것을 가까이서 보았다. "톰 브래디와 풋볼을 하는 것 같은 거예요. 하지만 너드 버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느낌을 모릅니다."
다음 해, 수학에서 중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16세였고, 다시 도전하려면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한 것이냐고 물었다. "지는 건 꽤 흔한 경험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자니까요. 보통 승자는 한 명뿐입니다."
문제는 패배가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공백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뭔가를 공부해야 할 것 같은." 그래서 상급생들이 쓰는 물리 교과서를 찾았다. 학교에서는 3학년이 되어야 물리를 가르쳤지만, 막 미적분을 배웠고, 처음으로 미적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했다. 파인만의 강의를 발견했다. "TV 프로그램처럼 소비했어요." 1년 안에, 역시 독학으로, 전국 5위 안에 드는 젊은 물리학자가 되었다.
미국 물리 올림피아드 팀에 들어 에스토니아로 갔다—유럽은 처음이었다—은메달을 땄다. 다음 해 코펜하겐에서는 금메달, 세계 24위를 기록했다. 18세에 베이 에어리어로 돌아온 그는 어머니가 하늘에 대해 옳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보다 위에 정확히 23명이 있었다.
하버드 대학교가 등록금 거의 전액을 지원했다. 1학년 봄학기에 얀은 컴퓨터 과학 124,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수강했다. 주로 2·3학년이 듣는 과목으로, 고통스럽기로 유명하다. 하버드 수강 가이드에서 학생들은 "필요악"이라고 묘사했다. 한 리뷰는 경고했다. "사회생활 없음. 연애 불가." 수강생 150명 중, 1학년인 얀이 1등을 했고,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하버드에서는 1학년 이후 상급생 기숙사에 배정된다. 얀은 포르츠하이머(Pforzheimer)에 배정되었고, 거기서 올림피아드 여름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던 두 살 어린 스콧 우(Scott Wu)와 가까워졌다. 우는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미국 대표로 3년 연속 금메달을 딴 인물로, 마지막은 만점이었으며, 후에 코그니션 AI(Cognition AI)를 공동 창업한다. 우가 2학년으로 포르츠하이머에 배정되었을 때 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나 포포에 배정됐어(Yo, I'm in Pfoho)." 얀이 답했다. "가자!(Let's go!)"
우는 얀이 공용 라운지의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재즈를 독학하며, 프레이즈가 맞을 때까지 반복해서 치는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둘은 체스, 바둑, 포커를 함께 했고, 무언가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얀은 역대 최고의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인 페이커(Faker), 위대한 바둑 기사들, 최고의 초단타 매매 트레이더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항상 어떤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이 분야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정말 잘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가 말했다.
우는 얀을 유달리 반골적이었다고 기억했다. 하버드 학생 대부분은 같은 환경에서 같은 정보를 흡수하며 대체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얀은 결코 그러지 않았다. 또한 매우 재미있었다고 우는 말했다. "매우 무표정하게. 예상과 완전히 다른 말을 가장 건조한 어조로 던져요."
방학에 얀은 일했다. 구글 X에서 인턴으로 자율주행차 프로젝트(후에 웨이모가 된)의 도구를 만들었다. 트레이딩 회사인 타워 리서치 캐피털(Tower Research Capital)에서도 인턴을 했다. 4학년 때는 자율주행차 회사 뉴로(Nuro)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는데, 대학 4년이 최소 1년은 너무 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학년 겨울, 그와 우는 허드슨 리버 트레이딩(Hudson River Trading, HRT)이 최초로 운영한 인턴 프로그램 10명 중에 포함되었다. HRT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퀀트 트레이딩 회사 중 하나다. 10명 중에는 이후 스케일 AI(Scale AI)와 데카곤(Decagon)을 각각 공동 창업하는 알렉산더 왕(Alexandr Wang)과 제시 장(Jesse Zhang)도 있었다. 인턴십은 3주간의 경쟁으로 구성되었다. 매 라운드마다 우와 얀이 1, 2등을 차지했다.
얀은 수학 학사와 컴퓨터 과학 석사로 졸업하고, 2017년 말 HRT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미국 주식 알고리즘 팀에 배정되었다. 매주 한 번 매니저와 미팅을 했다. 매니저는 여러 신입을 감독해 왔다. 보통 이 미팅에는 리듬이 있었다. 신입이 코드에서 벽에 부딪히고, 함께 해결하고, 신입이 돌아가서 다음 벽에 부딪히는. 얀은 벽에 부딪히지 않았다고 매니저는 회상했다. 아이디어를 갖고 왔다. 미팅은 효율적이었고,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시간이 좀 걸려서야 알아챘다. 얀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했지만, 그 어느 것도 그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8개월 만에 퇴사를 말하러 왔을 때, 매니저는 이해했다. 얀의 퇴사를 알리는 이메일은 회사 기준으로 유달리 따뜻했다.
얀은 HRT를 좋아했다. 트레이딩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맞거나 틀리거나, 시장이 알려준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당신과 경쟁하고, 그 잔인한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매우 가치 있는 산물을 만들어낸다: 유동성 있고 효율적인 시장. 하지만 그는 8개월을 이미 매우 좋은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쓰고 있었고, 자신 없이도 매우 좋은 회사 안에 있었고, 그것은 떨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세상에 어떤 가치를 더하고 있는가?
2017년 12월, 답이 그를 찾아왔다. 비트코인이 2만 달러에 육박했다. 코인베이스가 미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이었다. 수십억 달러가 예수 코인(Jesus Coin) 같은 ICO에 쏟아지고 있었다. 암호화폐의 크리스마스였다. 얀은 HRT 인턴 시절 전직 파트너 두 명이 인턴들에게 비트코인을 소개했을 때 처음 들었다. 아무에게도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HRT에 있는 동안 이더리움의 옐로 페이퍼를 발견했고, 그것은 전 세계가 동의하고 아무도 끌 수 없는 연산을 실행하는 컴퓨터를 묘사하고 있었다. 매일 금융을 만지고 있었다. 금융이 무엇 위에서 돌아가는지 볼 수 있었다. 그 논문은 신뢰를 코드로 대체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금융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018년 4월경 HRT를 떠나 예측 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날씨, 선거, 스포츠 등 결과가 있는 모든 것에 베팅할 수 있는 곳. 어떤 단일 주체도 돈을 통제하지 않는 블록체인에서 운영될 것이었다. 아키텍처는 얀과 공동 창업자가 최초로 도달했다고 믿는 아이디어에 기반했다: 오프체인 매칭, 온체인 결제. 이더리움은 실제 거래소를 운영하기엔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돈은 코드가 관리하는 스마트 컨트랙트에 놓이지만, 사용자에게는 빠르고 깔끔한 것이 보인다. 암호화폐의 탈중앙화 약속에 마찰은 없는 것. 하버드 룸메이트이자 역시 HRT를 떠난 브라이언 웡과 함께 바이낸스 랩스의 첫 스타트업 인큐베이션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들었다. 이름은 도(Deaux).
칼시(Kalshi)가 2019년 같은 논지로 설립되었다. 폴리마켓(Polymarket)은 2020년에 뒤따랐다. 둘을 합치면 현재 400억 달러 이상의 가치다.
도는 사용자 100명을 얻었다.
얀이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싱가포르의 하늘이 열렸다. 몇 분 만에 배수구를 채울 정도의 크고 무거운 빗방울. 테라스에서 빗소리가 아래 거리를 내리치는 소리, 타이어가 물을 가르며 더 커지는 차 소리가 들렸다.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어요." 도가 출시될 무렵 비트코인은 80% 넘게 떨어져 있었다. 예수 코인은 죽었고 부활하지 못했다. 아무도 내일 날씨가 어떨지에 베팅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문제는, 얀과 웡이 규제를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칼시는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규제 승인을 위해 3년을 싸웠다.
도가 문을 닫았을 때, 스콧 우는 그것을 안타까워한 지구상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정기 사용자 다섯 명 중 한 명이었다.
얀은 투자금 45만 달러 중 절반 이상을 돌려주었다. 아직 HRT의 경업금지 조항에 묶여 있어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캘리포니아 타호에 가서 눈이 녹을 때까지 스노보드를 탔다. 그리고 중국, 일본, 페루를 저예산으로 여행했다. 관광에도 놀라울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납득시키려 했다. 그에게 그 기술은 없었다.
2019년 말, 경업금지가 풀리자 얀은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했다. 양도소득세를 합법적으로 거의 0%로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1만 달러와 무언가 큰 일이 올 것이라는 감이 있었다.
파트너도 함께 푸에르토리코로 왔다. 해변 근처 월 2,000달러 미만의 원룸을 함께 썼지만, '함께'라는 표현은 얀이 허락하지 않은 수준의 동거를 암시한다. 모니터도 없어서 거실 TV를 징발했다. 첫 1년 정도 그녀에게 하루 약 30분의 관심이 배정되었다. 나머지는 TV 화면을 스크롤하는 트레이딩 알고리즘의 것이었다.
얀은 최소 하루 14시간, 쉽게 주 100시간을 일했다. 파이썬 스크립트로 시작하여, 암호화폐 거래소에 접속해 24시간 자동으로 거래하는 코드를 작성했다. 로직을 다듬고, 데이터를 추적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스템을 해체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암호화폐가 전통 금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HRT에서 거래했던 주식의 경우, 하나의 주문을 하나의 거래소에 넣으려면 뉴저지 세 곳의 코로케이션 사이트에 있는 13개 거래소에 연결하고, Reg NMS라 불리는 SEC 규정을 준수하고, CME 선물 데이터를 위한 시카고까지의 마이크로웨이브 링크와 수천만 달러의 초기 비용이 필요했다. 암호화폐에서는 HRT 직원이든 TV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모두가 웹 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것과 같은 HTTP 인프라에 접속했다. 아마존 웹 서비스의 서버만 있으면 됐다.
거의 2년 동안, 파트너는 TV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삶이 변하지 않았다. 같은 임대료, 같은 음식. 그가 열정적이고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알았고, 적당히 잘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물질적 증거는 없었다. 그러다 2021년 여름 어느 금요일 저녁, 그녀가 일주일 전에 예약한 저녁 식사에 그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 그는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해 못 하겠지만, 지금 이 버그를 안 고치면 10만 달러를 잃어."
그 저녁 이후 얀은 본격적인 사업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코딩 외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버드 포르츠하이머 시절, 모든 것을 동시에 완벽하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가장 낯선 기술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바로는, 일리엔싱크는 아시아에서 벤처 캐피털 회사의 비서실장으로 도쿄, 서울, 홍콩을 오가며 일하고 있었다.
연락해 보니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다. 코로나로 여행이 막혔고, 아시아를 누비던 직업은 아파트에서의 야간 전화 연속이 되어 있었다. 얀은 필요한 것을 설명했다. 직무 설명도, 직함도, 무엇을 하게 될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3년간 창업자를 평가하는 일을 해왔고, 얀이 무엇을 말하든, 그는 반대편에 거는 것이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공식적으로 카멜레온 트레이딩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일리엔싱크는 거래소 사업개발팀과의 줌 콜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산후안 해변 위의 1인 오퍼레이션에 전문적인 겉모습을 입힌 것이다. 점프 트레이딩, 타워, HRT, 제인 스트리트 같은 거대 마켓 메이커 아래에, 규모를 아무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익명 회사들의 계층이 존재했다. 카멜레온은 그중 가장 상당한 축에 속했다.
2022년이 되자 얀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4년간 암호화폐의 다양한 중앙화·탈중앙화 시장에 접속해 있었고, 자기 손익을 넘어 이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트코인은 중개인 없이 돈을 보유하고 이동하는 방법을 세상에 주었다. 이더리움은 아무도 끌 수 없는 컴퓨터를 주었다. 둘 사이에 금융 시스템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업계는 그 어느 것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양대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는 중앙화되어 있었다. 암호화폐는 없애기로 했던 바로 그것을 계속 다시 도입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일리엔싱크가 영국 시골의 호텔에서 팀 오프사이트를 준비했다. 그녀는 카멜레온을 6명 팀으로 키워놓은 상태였다. 얀은 비트코인 1개의 예산을 주었다. 팀은 런던으로 날아가 대영박물관을 방문하고, 시골 저택에서 며칠을 보냈다. 화면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리더는 완전히 편안하지는 않았다.
푸에르토리코로 돌아온 후 트레이딩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얀은 팀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확신이 가는 것은 없었다. 다만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원래 비전이 사토시가 만든 산업에 의해 조용히 묻히고 있다는 것이 그를 괴롭혔고, 그것이 실패한 모든 것에서 수백만 달러를 벌고 있는 사람에게 그래야 할 것 이상으로 마음에 걸렸다.
팀에게 얀은, 좀 너무 많은 신선한 공기를 마신 것처럼 보였다.
2022년 11월,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이자 시가총액 320억 달러였던 FTX가 9일 만에 붕괴했다. 고객 예금을 창업자의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트레이딩 회사 알라메다 리서치(Alameda Research)에 대출하고 있었다. 사용자들이 저축을 돌려달라고 했을 때, 현금은 없었다. 그로부터 6개월도 되지 않아, 500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생태계 테라(Terra)가 3일 만에 0이 되었다. 시스템 자체의 논리만으로 뒷받침되는 달러 연동 화폐를 만들려 했다. 페그를 유지하기로 한 알고리즘이 오히려 붕괴를 가속했다. 업계가 만들어낸 가장 큰 프로젝트 둘이 태양을 반 바퀴 도는 시간 안에 사라졌다.
얀은 충분히 보았다. 6명의 팀에게 트레이딩은 끝이라고 말했다. 반대할 수도 있지만 카멜레온은 끝이다. 틀리면 언제든 다시 트레이딩으로 돌아갈 수 있다. 몇 명은 반대했고, 몇 명은 떠났다. 하지만 그것이 얀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상의할 투자자도, 설득할 이사회도 없었다. 그의 돈이고 그의 결정이었으며, 새로운 미션이 있었다.
"FTX가 중앙화 거래소의 종말이 될 것이라고 지나치게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시장을 공략할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어요."
그가 말한 시장은 무기한 선물이었다. 경제학자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가 90년대에 가진 통찰에서 탄생했다. 전통적인 선물 계약에는 만기일이 있다. 만기가 되면 트레이더는 기초자산(원유, 밀, 돼지 뱃살)을 인수하거나, 포지션을 청산하고 새로 열면서 매번 수수료를 낸다. 실러는 당연한 질문을 했다: 돼지 뱃살 선물을 거래하는 사람 중 실제로 돼지 뱃살을 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왜 계약을 만기시키는가?
이미 작동하는 해결책이 있었던 전통 시장은 바꿀 이유를 보지 못했다. 2016년 비트멕스(BitMEX)라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바꾸었고, 이후 퍼프는 암호화폐가 거래되는 지배적인 방식이 되었다. 계약은 절대 만기되지 않는다. 트레이더들은 자본의 10배, 20배의 고레버리지 포지션을 잡을 수 있다. 그들이 생성하는 수수료와 청산이 중앙화 암호화폐 거래소를 업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회사로 만들었다.
2022년 말까지 쓸 만한 탈중앙화 버전을 만든 사람은 없었다. 이유는 기반 기술이었다. 대부분의 현대 시장에서 거래는 주문서(order book)를 통해 이루어진다. 매수자가 지불할 가격을, 매도자가 받아들일 가격을 말한다. 둘이 일치하면 거래가 성사된다. 시장에 사람이 많을수록 그 가격 차이는 줄어든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바이낸스까지 대체로 이렇게 작동한다. 하지만 주문서는 거래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트레이더들이 거래가 성사되기 전에 여러 번 가격을 옮기면서 생기는 끊임없는 업데이트 홍수도 따라가야 한다. 기존 블록체인은 이것을 못 했다. 너무 느리고, 너무 비싸고, 너무 불편했다. 모든 업데이트에 비용이 들고 처리에 시간이 걸렸다. 그 위에서 주문서를 운영하는 것은 다이얼업으로 뉴욕증권거래소를 돌리려는 것과 같았다.
2022년 말, 얀과 팀은 다른 프로젝트들이 구축하고 있는 모든 블록체인을 살펴보았고, 필요한 것에 근접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자체 블록체인을 만들었다. 3개월 만에 하이퍼리퀴드는 그 위에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의 커스텀 블록체인을 갖추었다. 그 후 얀은 그해 상당 부분을 트위터에서 하이퍼리퀴드가 무엇을 제공하는지, 왜 업계가 안주하고 있는 것보다 나은지를 주장하며 보냈다.
거래소의 문제는, 쓸모없다가 갑자기 쓸모 있어진다는 것이다. 빈 시장에 도착한 매수자에게는 살 상대가 없다. 전통적인 해결책은 마켓 메이커에게 돈을 지불하여, 누가 와도 거래 상대가 있게 하는 것이다. 현금이나 지분이나 토큰의 일부를 준다. 여럿이 하이퍼리퀴드에 접근했다. 한 명은 일리엔싱크에게 대놓고 말했다. 자기 회사가 킹메이커라고. "우리에게 돈을 안 주면 절대 이륙 못 합니다."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다. 하이퍼리퀴드는 2023년 2월 말에 출시되었고, 3월과 4월에는 사용자 대부분이 생전 퍼프를 거래해본 적 없는 NFT 수집가들이었다. 10달러짜리 거래를 하며 페이퍼 트레이딩 대회를 통해 레버리지를 배웠다. 진지한 사용자는 없었다.
그러다 5월, 얀은 카멜레온을 암호화폐에서 가장 성공적인 익명 트레이딩 오퍼레이션 중 하나로 만든 전략들을 HLP(Hyperliquidity Provider)라는 온체인 볼트에 넣었다. 10달러든 1,000만 달러든 예치할 수 있었다. 수수료도, 성과보수도 없었다. 볼트가 자동화된 전략을 돌렸고, 모든 수익은 돈을 넣은 사람에게 흘러갔다. 회계는 전부 블록체인 위에 있었다. 10달러를 예치하면 실시간으로 10달러가 불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FTX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면, 알라메다의 구멍은 온 세상에 보였을 것이다.
HLP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거래소는 유동성을 얻었다. 유동성을 제공한 사용자들은 전통 금융이 제공한 적 없는 것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한 초기 사용자는 일반인이 수수료 없이 초단타 매매 전략에 투자할 수 있었던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고 묘사했다.
당시에는 소수만 이해했다. 가을이 되자 암호화폐 가격이 매일 올랐고, 예치자들은 비트코인이 오르는 동안 HLP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고리즘은 제 역할을 하며 거래에서 돈을 벌었지만, 모든 것이 온체인에서 돌아갔기 때문에 넓은 시장에 대한 노출을 헤지할 수 없었다. 전통적인 마켓 메이커라면 다른 거래소에서 그 리스크를 상쇄했을 것이다. HLP는 설계상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거래마다 이기면서도 계속 오르는 시장에 대해 사실상 숏 포지션이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다른 프로젝트들이 트위터와 디스코드에서 하이퍼리퀴드를 공격했고, 얀은 반격했다. 아직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초기였다.
하지만 HLP는 답이 되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독립적인 마켓 메이커들이 올 때까지 유동성을 부트스트랩하려고 만든 것이었고, 그들에게 기회가 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었고, 넓은 스프레드는 호가를 제시하려는 누구에게나 쉬운 돈을 의미했다. 문서를 작성했다. 트위터에 마켓 메이킹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긴 글을 올렸다. 회사들의 온보딩을 안내했다. 대부분 꺼렸다. 다른 모든 거래소가 그들에게 돈을 줬다. 얀은 거부했고, HLP도 그 차이를 메울 만큼 확장할 수 없었다. "알라메다는 FTX가 작동하는 방식에 필수적이었습니다. 우리는 HLP가 하이퍼리퀴드가 작동하는 방식에 필수적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수치는 오르고 있었지만, 불만도 그랬다. 마켓 메이커들이 이론적으로는 곧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오지 않고 사용자가 먼저 떠나면, 끝이었다.
하지만 항상 나타나는 부류가 하나 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들.
그들의 애널리스트들이 개인 시간에 조용히 거래소를 사용하고 있었고, 하나둘씩 파트너들에게 가서 말했다: 이거 정말 괜찮다고. 파트너들이 전화를 걸었다. 얀과 일리엔싱크는 아웃리치를 한 적이 없었다. 피치 덱도 없었다. 프로토콜은 수수료를 발생시키고 있었지만, 얀은 처음부터 그 어떤 것도 팀에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고집했다. VC들이 전화에서 덱이 있냐고 물으면, 얀과 일리엔싱크는 그냥 이야기했고, 결국 덱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2024년 1월이 되자 펀드들이 직접 방문하기 시작했다. 일리엔싱크는 이 과정을 알고 있었다. 투자자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얀에게 알아야 할 조건들, 주의할 권리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약 2주 동안 그는 따랐다. "거의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VC들이 연락하니까 라운드를 모금할 때가 된 거지."
그의 유일한 조건은 10억 달러 밸류에이션의 텀시트만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이퍼리퀴드 출시 후 1년도 안 됐을 때였다. 팀은 얀의 개인 저축에서 월 수십만 달러를 소진하고 있었다. 한 투자자가 그의 숫자를 맞추었을 때, 얀은 주말을 갖고 생각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해 본 사람들과 VC들 자신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돈이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어느 시점에서 거절하는 것이 맞다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일단 맞다고 느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월요일 아침, 그는 일리엔싱크에게 말했다. "우리는 받지 않을 거야."
"뭐라고(What the fuck)?"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돈이 타고 있는 것을 관리하는 건 그녀였다. 이제 펀드가 약 1억 달러를 제안하고 있는데, 그가 정반대를 준비하느라 2주를 쓴 후에 거절한다고? 나머지 팀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펀드에 전화해 거절했다. 그들도 믿지 않았다. 분명 다른 곳의 텀시트를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아니었다. 하이퍼리퀴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프로토콜이었고, 첫날부터의 중립성이 핵심이었다. "비트코인이 VC 라운드를 받았다면, 정말 비트코인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전체 가치 제안이 파괴되었을 겁니다." 게다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얀은 팀 비용의 상당 부분을 개인적으로 부담한다.
2024년 1월 28일, 그는 네 줄을 트윗했다:
투자자 없음.
유급 마켓 메이커 없음.
개발팀에 대한 수수료 없음.
내부자 없음.
하이퍼리퀴드는 하루에 한 번 미팅을 한다. 아침 스탠드업이다. 싱가포르에서의 둘째 날 이것을 지켜보았다. 팀이 한 엔지니어의 화면 앞으로 모였다. 위에 용 인형이 올라앉아 있었다. 포트폴리오 마진이라는 새 기능을 테스트하고 있었고, 대화는 대부분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대화가 아니기도 했다. 얀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여 맨발을 응시했다. 옆의 엔지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이 침묵은 어색하지도 짧지도 않았고, 방 안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역학의 이유 중 하나는 기질이다. 팀은 24세에서 31세로 젊고, 거의 모두가 대단히 지적인 내향적 성격이다. 하지만 얀에게 독서를 많이 하느냐고 물었을 때, 수줍음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시사했다.
"관습적으로 최적이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책을 읽었어요." 검은 테 안경 너머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영구적으로 자기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책을 읽는 건 매우 시간이 많이 듭니다. 시간 대비 수익이 그리 좋지 않아요."
그는 잠시 턱을 움직였다—비행기에서 귀를 뚫는 사람 같은 습관으로, 나중에 알아보게 되는 버릇이었다. 젊은 기술자들에 대해 글을 쓸 때의 특정한 위험은, 조만간 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얀이 두 달에 한 권 읽고, 언젠가 앉아서 읽지 못한 모든 책을 읽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을 때 감사했다. 그러고는 왜 더 많이 읽는 것이 미뤄져야 하는지 계속 설명했다.
"당신이 무언가를 처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을 하는 데 시간을 쓸 가치가 아마 없을 겁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요. 그런 가정 하에서라면, 읽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당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미 도움이 되는 맥락이 있다면, 그건 아마 이미 된 거예요. 이미 됐다면, 왜 하고 있는 거죠?"
2023년 말, 하이퍼리퀴드는 암호화폐가 잘 알려진 플레이북을 가진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얀은 다른 것들처럼 그것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토큰은 보유자에게 프로젝트 성공의 지분을 준다. 누가 먼저 토큰을 받을지, 어떤 조건으로 받을 지를 결정하는 것은 보통 포인트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진다. 프로젝트가 플랫폼 사용이 포인트를 적립한다고 발표한다. 사용자들은 포인트가 나중에 토큰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전환 전에 최대한 많은 지분을 쌓으려고 몰려든다.
문제는 몰려드는 사용자 대부분이 실제 사용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식을 역공학하고, 최대 보상을 수확하는 자동화 전략을 돌리고, 떠나는 전문 조직이다. 프로그램이 설계된 대상인 실제 사용자들은 나머지를 받는다.
하이퍼리퀴드 버전은 2023년 11월 1일 시작되었다. 플랫폼에서 거래하는 사용자에게 매주 포인트가 쌓였지만, 공개된 공식은 없었다. 아무도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랐다. 매주 금요일 일리엔싱크가 주간 포인트를 발표했고, 의식이 형성되었다. 사용자들은 디스코드에서 그녀의 핸들 옆에 입력 중이 뜨는 것을 지켜보다, 모여서 받은 것을 비교하고, 스크린샷을 공유하고, 시스템 작동 방식에 대한 이론을 세웠다. "실제 사용자에게 보상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의하기 매우 어렵지만, 하이퍼리퀴드의 포인트 프로그램은 파머의 비율을 99%에서 20%로 줄였을 겁니다."
이 무렵, 얀이 직접 돈을 주길 거부했던 마켓 메이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바이낸스 최대 마켓 메이커 중 하나로, FTX 이후 새로운 거래소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얀에 대해 좋게 말하는 공통 지인이 있었고, 2023년 9월 싱가포르 컨퍼런스에서 얀과 일리엔싱크를 처음 만났다. "제프는 야심적이었지만 오만하지 않았어요. 자기가 하려는 것을 매우 절제되게 설명했고, 모든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나와서 팀에 문자를 보냈다: 연동하자. 2주 뒤, 라이브였다.
연동해서 발견한 것은 사용자들이 스스로 발견하고 있던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인프라가 트레이더만이 알아챌 수 있는 방식으로 사려 깊었다. 하이퍼리퀴드는 가장 공격적인 퀀트 회사들이 다른 마켓 메이커를 따내기 어렵게 만드는 일종의 속도 범프를 내장했다. 이 기능은 이후 업계 전체에 복제되었다. 효과는 마켓 메이커가 생존하기 위해 레이턴시의 최첨단에 있지 않아도 더 깊은 유동성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얀은 사실상 일부 거래소 거래량—회사들이 서로를 스나이핑하며 생성하는 종류—을 희생하고, 일반 사용자에게 더 나은 가격을 선택한 것이다. 하이퍼리퀴드 자체의 수익을 줄이는 트레이드오프였다.
같은 컨퍼런스, 토큰2049에서 얀과 일리엔싱크는 팀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의 암호화폐 파생상품 규제 전망이 불확실했고, 거기서 구축하는 것이 불필요한 리스크처럼 느껴졌다. 한 변호사는 미국 규제 당국이 "이 기술을 미국에서 금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시기라고 표현했다. 일리엔싱크는 홍콩, 스위스, 싱가포르를 살펴보고 싱가포르로 정했다. 현대적이고 안전했으며 방해 요소가 없었다.
2024년 봄, 팀이 이주했다. 이 도시국가가 지루하기 때문에 얀에게 맞았다. 그에게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 일하기와 운동하기. 수영, 러닝, 부상 위험 없이 지칠 수 있는 건 뭐든 한다. 이 원칙은 푸에르토리코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얼굴에 흉터가 남고 키보드에서 1주일을 잃은 뒤 도달한 것이다. 운동은 머리를 맑게 해서 다시 만들러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유일한 여가 양보는 일요일 아침이다. 나머지 일주일은 하이퍼리퀴드의 것이다. 이발도 직접 한다. 미용실 가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그는 이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에 대해 유달리 느슨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좀 너무 무르다고 생각해요. 뇌는 장기입니다. 더 오래 일해야 한다면, 훈련할 수 있어요."
팀에게 이것을 강요하지 않는 법은 배웠다. 매일 검은 나무 테이블에서 가족처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목요일에는 치폴레를 먹는다. 싱가포르에 치폴레가 없어서 레시피를 셰프에게 주었고, 셰프가 만들어 준다. 점심 대화는 보통 팀이 최근에 본 것이나 들은 것 쪽으로 흘러간다. 얀은 이때 조용해지며 다른 것을 생각하는 표정이 되는데, 아마 실제로 그럴 것이다.
같은 봄이 되자, 하이퍼리퀴드는 하루에 10억 달러 이상의 퍼프 거래량을 처리하고 있었고, 인프라가 무게에 삐걱거렸다. 어느 오후, 알림 시스템이 울렸고 멈추지 않았다. 플랫폼이 도착한 사용자 수를 감당하지 못했다. 하이퍼리퀴드의 첫 번째 다운타임이었다. 하지만 사무실 밖의 모든 사람이 신경 쓰는 것은 다가오는 하이퍼리퀴드 토큰뿐이었다.
5월, 얀은 향후 6개월의 로드맵을 트윗했다. 기술적 야심으로 가득했다. 토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전 몇 달간, 하이퍼리퀴드는 파생상품에서 현물 거래로 확장했다. 첫 번째로 상장한 토큰은 고양이 이름을 딴 퍼(Purr)였다. 현물 거래는 필요한 단계였다. 하이퍼리퀴드의 토큰을 출시하려면 그것을 거래할 현물 시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파생상품 거래소가 직면한 적 없는 문제를 도입했다. 퍼프를 거래할 때는 기초자산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 가격에 베팅하는 것이다. 현물을 거래할 때는 누군가가 보관해야 한다. 얀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용자가 자기 자산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수탁자가 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이퍼리퀴드를 블록체인 위에 앉은 거래소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거래소가 내장된 블록체인으로 생각해야 했다. 거래소를 운영하기 위해 구축한 블록체인은 이미 초당 수십만 건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었고, 이것을 프로그래밍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더리움에서 수천 명의 개발자가 하는 것처럼, 누구나 코드를 작성하고 금융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는 개방형 시스템이 될 것이었다. 차이점은 이더리움이 제대로 된 거래소를 돌리기에 너무 느렸다는 것이고, 그래서 얀이 처음부터 자체 체인을 만든 것이다.
그 체인을 개방하면, 자산을 프로토콜 자체가 보안하는 탈중앙화 브릿지를 통해 하이퍼리퀴드에 가져올 수 있었다. 어떤 단일 당사자도 보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가능 레이어에 구축하는 누구나 거래소의 주문서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유동성에 접근할 수 있었다. 개발자가 대출 플랫폼이나 스테이블코인이나 모바일 트레이딩 앱을 만들어 전문 회사들이 하루에 수십억 달러를 호가하는 같은 시장에 직접 연결할 수 있었다.
얀은 비유를 싫어한다. 하이퍼리퀴드는 전통 금융에서 대응물이 없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스스로의 조건에서 이해하기보다 기존 카테고리에 끼워 맞추려 하며, 그것이 실수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얀이 아닌 우리에게, 그것은 아마존이 마켓플레이스를 돌리기 위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축하다가 클라우드 서비스가 마켓플레이스보다 크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같았다. 얀이 그 트위터 게시물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표현은, 하이퍼리퀴드가 모든 금융을 수용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변화를 하기 꺼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이것에 서명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이퍼리퀴드에 가상 머신을 내장하는 것은 거대한 프로젝트였고, 팀은 가능한지도 몰랐다. 얼마나 많은 것을 처음부터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명확해졌다고 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바이낸스 비슷하고 이더리움 비슷하지만 둘 다 제대로가 아닌 컴포넌트들을 수년간 꿰매게 될 것이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커뮤니티는 분노했다. 에어드롭을 기대했다. 대신 인프라에 대한 트윗을 받았다. 1,000개 좋아요를 받은 댓글이 브레이킹 배드의 밈을 인용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이 있었는데." "싫어요. 우리를 배신했어요." 사용자들은 블록체인을 원하지 않았다. 돈을 원했다. 15분 예정이었던 사용자 인터뷰가 한 시간 반으로 늘어나 끝나지 않은 채 팀에 합류한 슈리안(Xulian)이 분노를 흡수했다. "제프는 장기적으로 무엇이 최선인지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언가가 당장 좋아 보이는지 정말 신경 쓰지 않아요."
일리엔싱크가 말한 시끄러운 사람들은 결국 불평에 지쳤다. 팀은 다음 6개월을 현물, 프로그래밍 가능 레이어 구축, 별도 네트워크에서의 테스트, 스테이킹 준비에 쏟았다. 그리고 11월 29일 금요일, HYPE가 도착했다.
하이퍼리퀴드는 총 토큰 공급량의 31%를 약 94,000명의 초기 사용자에게 에어드롭했다. 조건도, 베스팅 스케줄도 없었다. 플랫폼을 사용하고 포인트를 적립한 사람이라면, 그날 아침 지갑에 토큰이 있는 채로 깨어났고, 잠들었을 때보다 더 부자가 되어 있었다. 시초가 기준으로 에어드롭은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였다. 사상 최고가에서는 160억 달러에 달했다. 암호화폐 역사상 가장 큰 부의 이전이었고, 모든 것이 사용자에게 갔다.
팀의 배분은 23.8%로, 커뮤니티 지분보다 작았고 수년에 걸쳐 베스팅된다. 당일 그들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VC들도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토큰을 원하면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은 가격으로 공개 시장에서 사야 했고, 하이퍼리퀴드에서만 가능했다. 다른 곳에는 상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돈을 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아침 얀은 트위터에서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중간 6자리 에어드롭 받고 일어났다"고 한 사용자가 적었다. 또 다른 사용자가 답했다. "오늘, HYPE가 내 인생을 바꿨다. 수년간 편안히 살고, 가족을 도우고, 상승장에 투자하기에 충분한 돈이." 또 누군가: "7자리 에어드롭 제프 만세."
"매우 기분이 좋았어요. 무언가에 일찍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상승분에 참여하고, 네트워크에 대한 의미 있는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 이후로 어떤지, 자기가 만들고 있는 모든 것에 공개된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것이 어떤지 물었다.
"최악이죠(It sucks)."
2025년 3월 말 수요일 밤, 일리엔싱크의 컴퓨터가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통화 중이었다. 통화를 끊었다. 화면에서 하이퍼리퀴드의 커뮤니티 볼트 HLP의 잔고가 떨어지고 있었다.
한 트레이더가 며칠간 작고 조율된 포지션으로 하이퍼리퀴드의 방어를 탐색하고 있었다. 이제 탐색이 끝났다. 시가총액 약 1,500만 달러, 일일 거래량 72,000달러의 무명 토큰 젤리젤리(Jelly Jelly)에 세 개의 포지션을 열었다. 하나는 대형 숏, 둘은 롱이었다. 숏은 실패하도록 설계되었다. 트레이더는 자기가 펌프할 토큰에 대해 베팅하고 있었고, 포지션이 무너질 때 다른 누군가가 떠안게 되는 것이었다. 수류탄의 핀을 뽑아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것과 같았다.
그 다른 사람은 HLP였다. 하이퍼리퀴드에서 주문서가 트레이더의 청산을 흡수하지 못하면, 커뮤니티 볼트가 포지션을 넘겨받아 시간을 두고 정리한다. 정상 조건에서 이것은 일상적이다. 하지만 젤리젤리는 주문서가 거의 없었고, HLP가 갇혀 빠져나올 수 없는 동안 트레이더는 공개 시장에서 최대한 빨리 젤리젤리를 사들이고 있었다. 가격이 1시간 만에 500% 넘게 올랐다. 매 틱마다 볼트의 손실이 커졌다.
일리엔싱크는 손실이 500만 달러, 800만 달러, 1,200만 달러를 지나가는 것을 화면으로 지켜보았다. 시스템에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500만 달러짜리 토큰을 무기로 사용할 세계를 설계에 반영한 사람은 없었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밸리데이터들이 접속했다. 하이퍼리퀴드의 블록체인은 약 24명의 독립 운영자가 보안했는데, 이들은 대량의 HYPE를 담보로 스테이킹하여 모든 거래를 검증하고 투표권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토큰이 존재하기 전부터 하이퍼리퀴드를 사용해 왔다. 세계 어디서든 누구나 볼 수 있는 같은 공개 원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었고, 그들은 이것을 거래로 간주하지 않았다. 몇 분 안에 전원이 투표하여 젤리젤리를 상장 폐지하고, 조작이 시작되기 전의 가격으로 포지션을 정산했다. 합법적인 포지션을 가진 모든 사용자가 보전되었다. 돈을 잃은 유일한 사람은 공격자였다.
이 사건은 하이퍼리퀴드 비판자들이 묻기를 기다리던 질문을 표면화시켰다. 약 24명의 밸리데이터가 시장 가격을 무시하고 자기들이 선택한 숫자로 계약을 정산할 수 있다면, 시스템이 얼마나 탈중앙화된 것인가? 얀은 피하지 않았다. 밸리데이터 셋은 의도적으로 작았다. 몇 주마다 업그레이드를 배포하는 시스템은 매번 천 명의 참여자를 조율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늘겠지만, 하이퍼리퀴드를 여기까지 오게 한 속도를 희생하면서는 아니다.
"수정에 한 달 걸렸어요. 누가 알려주기보다 공격에서 배워야 하는 건 안타깝죠. 하지만 이 사람들은 분명히 문제를 알리려 한 게 아니었어요. 악용하려 한 거죠."
공격이 벌어지는 동안, 세계 최대 중앙화 거래소 중 둘인 바이낸스와 OKX가 자체 플랫폼에 젤리젤리 무기한 선물을 상장했다. 트위터에서 한 사용자가 바이낸스 공동 CEO인 이허(Yi He)를 태그하며 토큰 상장을 촉구했다. "젤리젤리를 상장하면 하이퍼리퀴드는 아마 끝날 겁니다." 이허가 중국어로 답했다. "알겠다, 알겠어."
이것이 야심에 대한 보상이었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푸에르토리코의 해변을 떠난다. TV와 개인 저축으로 무에서 유를 만든다. 1억 달러를 거절한다. 수십억을 낯선 이들에게 준다. 그리고 무엇을 얻는가?
전쟁이다.
2023년과 2024년에 하이퍼리퀴드는 무시될 만큼 작았다. 에어드롭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시가총액 42억 달러, 90억 달러, 그 이상은, 암호화폐의 모든 대기업이 하이퍼리퀴드가 자기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미래의 윤곽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바이낸스가 자체 탈중앙화 거래소를 발표했다. 코인베이스와 로빈후드가 선물 상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하이퍼리퀴드를 겨냥한 새 프로토콜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얀의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
별것 아닐 수도 있었지만, 2025년 암호화폐 보유자에 대한 폭력 공격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프랑스에서는 하드웨어 지갑 회사의 공동 창업자가 손가락이 잘려 그 사진이 사업 파트너에게 몸값으로 보내졌다. 캐나다에서는 한 가족이 워터보딩을 당했다. 암호화폐 송금은 즉각적이고, 취소 불가능하며, 은행 승인이 필요 없다. 렌치와 지갑 주소를 가진 사람이면 재산을 탈취할 수 있다.
얀은 더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고, 경호원을 고용했으며, 지구상 가장 안전한 섬 도시에 어느 정도 갇히게 되었다. 여행할 때는 두 명의 개인 경호원이 동행한다. 일리엔싱크는 팀에게 낯선 사람이 어디서 일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지를 퀴즈로 내기 시작했다. 이 프로필을 위해 나에게 말한 거의 모든 사람이 가명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얀에게 2025년 가장 힘든 순간을 물었을 때, 그는 젤리젤리나 경쟁사나 경호원을 언급하지 않았다. API 서버에 대해 말했다.
여름 내내,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넘기고 하이퍼리퀴드가 월 4,000억 달러 이상의 거래량을 처리하는 동안, 마켓 메이커들을 블록체인에 연결하는 서버들이 장애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회사가 온보딩되어, 각각이 주문, 취소, 업데이트의 폭주를 보냈고, 이 모든 것을 체인에 중계하는 인프라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즉시 처리되어야 할 주문이 3초가 걸렸다.
체인 자체는 유지되었다. 사용자 자금은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 하지만 밀리초에 부가 좌우되는 시장에서 3초는 경고였다. "극심한 변동성이 아닐 때 병목이 발생한다면, 그런 이벤트가 올 때는 용납할 수 없는 거죠." 일리엔싱크가 말했다. 얀은 몇 주간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1시 반에 자면 3시에 누군가 또 망가졌다고 핑을 보내 깨곤 했다. 팀은 서버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했다.
10월 10일, 그 이벤트가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100% 관세를 위협했고, 24시간 만에 190억 달러 이상의 레버리지 암호화폐 포지션이 청산되었다. 업계 역사상 최대의 청산 사태였다. 160만 명 이상의 트레이더가 연쇄적 캐스케이드에 휘말렸고, 강제 매도가 가격을 낮추고, 더 많은 청산을 유발하고, 다시 가격을 낮추었다.
하이퍼리퀴드는 다운타임 없이 출금도 중단하지 않았다. 새로 만든 서버가 버텼다. 젤리젤리 수정도 버텼다. HLP가 수십억을 백스톱 청산하며 4,000만 달러를 벌었다. 하지만 하이퍼리퀴드 블록체인의 모든 거래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청산을 셀 수 있었다. 다른 거래소들은 같은 정확도로 보고하지 않았다. 바이낸스는 초당 하나만 공개했다. 주요 매체들이 의존하는 데이터 애그리게이터는 받은 것을 사용했고, 받은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미디어는 하이퍼리퀴드가 모든 거래소 중 가장 많은 청산을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가장 투명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가장 위험한 곳처럼 보였다.
3일 뒤, 나머지 암호화폐가 사상자를 세고 있는 동안, 얀의 팀은 하이퍼리퀴드의 미래를 정의할 업그레이드를 배포했다: 하이퍼리퀴드 개선 제안 3(HIP-3). HIP-3는 50만 HYPE 토큰을 스테이킹한 누구나 새로운 무기한 선물 시장을 플랫폼에 배포하고, 자체 매개변수를 설정하고, 가격 피드를 선택하고, 거래 수수료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운영 2년차를 마칠 때까지 하이퍼리퀴드는 약 9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1달러도 팀에게 가지 않았다. 99%가 자동으로 HYPE로 전환되어 소각, 즉 유통에서 영구히 제거되어, 플랫폼 수익의 거의 전부를 토큰 보유자에게 돌려주었다.
일리엔싱크에게 2025년을 어떻게 돌아보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성장한 것 같았어요."
사무실에서의 마지막 오후, 손대지 않은 위스키가 들리는 부엌 옆 검은 식탁에서 얀과 앉았다. 팀이 매일 함께 점심을 먹는 그 자리다. 아껴둔 질문들이 있었다.
하이퍼리퀴드는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었다. HIP-3 이전에 출시된 빌더 코드는 독립 개발자들이 플랫폼의 주문서 위에 트레이딩 앱을 만들고, 사용자가 발생시키는 수수료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했다. 암호화폐 최대 투자 회사 중 하나인 패러다임(Paradigm)의 공동 창업자 매트 황은 이를 "사용자 경험을 프랜차이즈화하는 훌륭한 방법"이라 불렀다. 이 팀들은 2024년 10월 이후 7,00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
HIP-3는 더 나아갔다. 출시 이후 6개월 동안 일곱 개의 독립 팀이 수백 개의 시장을 배포했고, 대부분 암호화폐와 무관한 자산이었다: 원유, 금, 주가지수, 외환. 최대 배포자인 트레이드[XYZ]는 2025년 10월 이후 주당 38%씩 성장했다. 192,000명의 트레이더를 대상으로 1,300억 달러 이상의 거래량을 기록했다. 독립 배포자가 만든 시장이 이제 하이퍼리퀴드 전체 거래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2026년 2월에는 HIP-4가 발표되었다. 도착하면 누구나 옵션이나 예측 시장을 플랫폼에 배포할 수 있다. HIP-3는 하이퍼리퀴드를 가격이 있는 모든 자산에 개방했다. HIP-4는 결과가 있는 모든 이벤트에 개방할 것이다.
하이퍼리퀴드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들은 이제 얀을 위해 일하지 않는, 앞으로도 절대 일하지 않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팀이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지.
"역동적인 질문이고,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각도는 철학적인 것입니다. 로빈후드처럼 금융 슈퍼 앱을 만들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금융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건가요?"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겠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접근 가능한 금융 시스템이 세계에 더 나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공개되어 있고 단일 기업이 소유하지 않는 레일 위에 있는 것이요.
"그것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와서 하이퍼리퀴드 위에서 성공하고 비즈니스를 소유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경쟁하고 자기 것을 소유하면, 더 회복력 있고 확장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어집니다."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은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 한 회사 안에 두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반대를 선택했다. "어렵게 하는 방법이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도달하느냐가 결국 무엇을 만들었는지를 결정하니까요."
트레이드[XYZ]의 창업자는 아무도 하이퍼리퀴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날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최종 상태에서, 그것은 단순히 금융의 인프라와 유동성일 수 있어요. 그리고 아마도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와 팬텀, 그 외 누구든이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거죠. 그건 꽤 멋진 일이에요."
황의 회사 패러다임은 HYPE 토큰 출시 직후 공개 시장에서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1명의 팀이 만들었다는 거예요." 11명, 그리고 AI는 거의 없이. 사무실에는 최신 모델을 돌리는 별도의 AI 노트북이 있었다.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우리는 AI의 능력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합니다. 아직 중요한 코드를 작성할 만큼 좋지 않아요."
모든 것 위에 드리운 가장 큰 먹구름에 대해 물었다. 하이퍼리퀴드는 2023년 이후 누적 4조 달러 이상의 거래량을 처리했다. 탈중앙화 무기한 선물 시장의 37%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구상 최대 자본 시장의 사용자가 손대지 못하는 상태에서 해냈다. 미국인은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
장애물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통과된 미국 법률 도드-프랭크(Dodd-Frank)로, 모든 파생상품 거래가 규제된 중개인을 통하도록 요구한다. 아이러니는 하이퍼리퀴드의 공개 원장이 이미 규제 당국에 도드-프랭크가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 즉 시스템의 모든 레버리지에 대한 실시간 가시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CFTC)가 새로운 규칙을 작성하기 전에는, 미국인이 탈중앙화 프로토콜을 통해 파생상품을 거래할 합법적 경로가 없다. 자신의 철학에 따라 얀은 정책 팀을 직접 구축하지 않았다. 방문 한 달 후, 하이퍼리퀴드 정책 센터가 독립 비영리기관으로 출범했다. 암호화폐에서 10년을 보낸 저명한 변호사 제이크 체르빈스키(Jake Chervinsky)가 이끈다. 하이퍼리퀴드 생태계 성장을 지원하는 독립 기구인 하이퍼 재단이 출범 자금으로 2,800만 달러 상당의 HYPE 토큰 100만 개를 기여했다.
얀은 하이퍼리퀴드가 만들고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전략이 되지 않는 규모에 도달했음을 인정했다. "반대편에서 로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떻게 끝날지 초고확신을 갖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규제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고, 방향에 대해서는 낙관적입니다."
한 주 내내 아껴둔 마지막 질문이 하나 있었다: 정말로 하이퍼리퀴드가 모든 금융을 수용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가 미소지었다. 직접 이발하는 사람치고는 예상보다 자주 웃는다. "'모든'은 좀 과장법 이죠. 우리의 열망적 목표입니다. 하지만 정말 어렵고, 수십 년 목표는 매우 주제넘은 것이에요."
"바둑과 체스의 차이예요. 체스에서는 실력이 좋아질수록 더 많은 수를 읽어요. 바둑에서는 가능성이 너무 많죠. 전체 트리를 읽으려 하기보다 다음 수에 대한 직관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요."
더 필요해 보였나 보다. 다른 방식으로 말해주었다. 그는 항상 이 원칙대로 살려고 노력해왔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에 매우 확신을 갖고, 지금 딛고 있는 한 걸음을 잘 실행하되,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는 채로.
다음 날 저녁 금요일, 팀은 도시 호텔 안에 있는 중국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사무실 을 봉제 동물로 점령한 엔지니어는 참석하지 못했다. 나를 포함해 나머지 모두가 있었다. 조용한 로비를 지나 복도를 따라 어두운 나무 패널의 개인실로 안내받았다. 조각 격자 스크린이 있고 원형 테이블이 차려져 있었다. 저편의 칸막이 뒤에 안락의자들이 커피 테이블 주위로 배치되어 있었다. 먼저 거기 앉아 차를 마셨다.
방이 추웠다. 에어컨이 이 밤보다 더 따뜻한 저녁에 맞춰져 있었다. 누군가가 막내 엔지니어 에게 담요를 건넸다. 어깨에 두르니 크리스찬 디올이었다. 이것이 얀과의 명품 브랜드 대화로 이어졌는데, 둘 다 그 주제에 대한 배경이 없었다. 한 명이 LVMH를 "LHVM"이라고 발음했다. 아무도 고쳐주지 않았다. 랄프 로렌 모자를 쓴 일리엔싱크가 한숨을 쉬었다.
식사로 자리를 옮기자, 턴테이블이 돌기 시작하더니 멈추지 않았다. 음식이 가장자리에 하나둘 놓였고, 넓고 파란색과 흰색의 도자기 그릇이 도착하자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안에는 조약돌과 작은 잎사귀 위로 얕은 물이 깔려 있었다—미니어처 잉어 연못이었다. 가리비 모양의 흰 그릇에 국수가 담겨 가운데 놓이고, 세 마리의 작은 주황색 물고기가 두 그릇 사이 해자를 돌며 헤엄쳤다. 웨이터가 요리를 설명했다. 이 물고기는 5분 일하기 위해 30일 을 쉰다고 했다. 물고기가 원을 그리며 헤엄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의 휴식을 시작하기 위해 데려갔다.
밤 9시 15분쯤 나왔다. 가벼운 비 속을 걸었다. 인사하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호텔에서 몇 분 거리에서, 택시가 고속도로로 올라가는 길고 왼쪽으로 도는 경사를 탔고, 돌아서자 금융 지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HSBC, J.P. 모건, 스탠다드 차타드, 도이체방크, 씨티, 검은 하늘에 밝게 빛나는 로고들. 그리고 길이 동쪽으로 곧아지자, 그것들이 하나둘 뒤로 사라져, 백미러에는 젖은 도로만 남았다. 얀은 반대 방향으로, 경호원을 두고 온 직장으로 돌아갔다.